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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및 관련 인물

정성호 국회의원 프로필 의원 부인 아들 고향 재산 법무부장관 후보자

by 트정공 2025. 6. 29.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인 정성호 국회의원 프로필과 법무부장관 후보 소식등을 이번 글을 통하여 정리해 안내해 드립니다.

 

정성호 국회의원 프로필
정성호 국회의원 프로필

 

정성호는 대한민국의 변호사 출신 정치인입니다. 1961년 10월 19일 강원도 양구군 동면에서 태어났으며, 현재는 경기도 양주시 고암동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정성호 국회의원 프로필

 

본관은 진주 정씨입니다. 학력으로는 상리국민학교를 졸업한 후 연천중학교를 거쳐 단국중학교를 졸업했고, 대신고등학교를 마친 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서 법학 학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대진대학교 법무대학원에서 법학 석사 과정을 수료했습니다. 군 복무는 육군 중위로 마쳤으며, 종교는 개신교입니다.

 

정성호 국회의원 프로필

 

정성호 의원은 제17대 국회를 시작으로 제19대부터 제22대까지 총 5선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의정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동두천시 양주시 연천군 갑 지역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당내 인재위원회 위원장으로도 활동 중입니다. 1남 2녀의 자녀를 두고 있습니다.

 

 

정성호 의원은 유연한 성품과 계파를 가리지 않는 정치적 태도로 인해 정계에서 갈등이 적은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평가를 입증하듯, 국회의원과 기자들이 뽑는 백봉신사상에서 최고 영예인 대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정 의원은 연애에 있어서도 특별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학교 시절 만난 세 살 연상의 첫사랑과 결혼까지 이어졌고, 이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엘리트가 고졸 직장인과 결혼하겠다는 결심을 했다는 점에서 집안의 반대를 무릅쓴 순애보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족 전체가 군 복무를 모범적으로 이행한 점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부친은 육군 상사로 6·25 전쟁과 베트남전에 참전해 화랑무공훈장과 월남금성무공훈장을 수여받은 참전 유공자이며, 본인도 제3보병사단에서 정훈장교로 복무 후 중위로 전역했습니다. 복무 중 국방부 장관상에 해당하는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장남 역시 육군 현역병으로 성실히 복무해 병장 만기전역하였으며, 세대별로 각각 장교, 부사관, 병사로 군 복무를 마친 이력 덕분에 병무청으로부터 2023년 병역명문가 가문으로 선정된 바 있습니다. 이 가문이 국가에 복무한 총 기간은 28년을 넘습니다.

 

정성호는 경기도 양주시에서 처음으로 다섯 번 연속 국회의원으로 선출된 인물입니다. 전통적으로 보수 성향이 강한 경기 북부에서 진보계 정당 소속으로 장기간 의정활동을 이어왔다는 점에서 정치적 입지와 영향력을 입증한 셈입니다. 특히 서울 지하철 7호선 연장 추진은 그의 주요 공약 중 하나였으며, 실현에 성공하면서 지역 내 신뢰를 크게 얻었습니다.

 

 

정계에 들어서기 전에는 법조인으로 활동했으며, 17대 국회에서 양주시·동두천시 지역을 대표하며 처음 국회에 입성했습니다. 이후 19대부터 22대까지 재선과 삼선, 그리고 5선까지 성공하며 양주시 지역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졌습니다. 선거구가 단독으로 조정된 20대 총선부터는 양주시 단일 지역구에서 꾸준히 승리를 거두고 있습니다.

 

정성호 의원은 중도적이고 절제된 태도를 유지해온 점에서 강성 계파 정치인들과는 다소 다른 행보를 보여왔습니다. 친문 진영이 당내 주류였을 때는 비문 성향으로 구분되었으며, 당내 이견도 종종 드러내는 등 독자적인 입장을 고수해왔습니다.

 

 

그는 언론과의 대화에서 자신이 ‘좌장’이라는 표현을 받아들이지 않지만, 이재명 당시 대선 후보와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간 단일화를 이끌어내고, 김 전 부총리의 입당과 경기도지사 출마를 조율하는 데 깊숙이 관여하면서 중앙 정치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한 바 있습니다.

 

1961년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난 정 의원은 부친의 군 복무로 인해 접경 지역을 따라 여러 곳을 전전하다 경기도 연천에 정착했습니다.

 

대학 시절에는 군사정권에 맞선 시위에 참여했으며, 이 과정에서 체포와 구금을 경험하며 인권과 정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게 되었습니다.

 

 

1986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1989년 군에 입대해 제3보병사단에서 공보장교로 복무했고, 중위로 전역한 후에는 경기 북부 지역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무료 법률상담과 환경운동 참여 등 시민사회에서 꾸준히 활동하면서 사회 구조적 문제 해결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그 길이 정치 참여로 이어졌습니다.

 

1999년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하면서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이듬해 새천년민주당 동두천·양주 지구당 위원장을 맡으며 지역 기반을 다졌습니다.

 

 

2000년 총선에서는 첫 도전에서 낙선했지만, 2004년에는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해 보수 강세 지역에서 당선에 성공했습니다. 이후 선거에서 낙선과 당선을 반복하면서도 당내 주요 직책과 상임위원장을 연달아 맡으며 꾸준히 정치적 입지를 확장했습니다.

 

재선 이후에는 서울 지하철 7호선 유치, GTX-C 덕정역 확정 추진 등 지역 현안을 해결하며 주민들의 지지를 끌어올렸습니다. 또한 당의 비상대책위원, 수석대변인, 법사위와 기재위 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중앙정치 무대에서도 역할을 넓혀갔습니다.

 

 

당내 계파 정치에 얽매이지 않는 자세로 인해 '영원한 비주류'라는 평가도 받으며, 2017년에는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 캠프에 참여해 대선 경선을 지원했습니다.

 

 

이후 2020년 총선에서는 62.64%라는 높은 득표율로 4선 고지를 밟았고, 같은 해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며 다시 한 번 중책을 맡았습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공개적으로 제지한 사건 등으로 강성 지지층의 비판을 받은 적도 있으나, 그는 절차와 균형을 중시하는 자세를 견지해왔습니다.

 

이후 이재명 후보 대선 캠프인 열린캠프에 총괄특보단장으로 참여했으며, 내부 균형과 조율을 담당하는 핵심 인사로 활동했습니다.

 

2022년에는 임명직을 맡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2024년 제22대 총선에서도 무난히 승리를 거두며 5선에 성공했습니다. 44억9784만원의 재산을 당시 신고한바 있습니다.

 

 

이후 국회의장 후보군으로 거론되었으나 경선 도중 자진 사퇴했으며, 최근에는 금투세 관련 입장 번복 논란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는 민주당 내 이재명 대표와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으며, 정성호 의원은 이재명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18기 동기입니다.

 

 

일각에서는 그를 이재명의 정치적 조언자 혹은 좌장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 의원 본인은 이재명과의 관계를 사적인 친분이라고 표현하며 과도한 해석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재명 정부의 초대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유력한것으로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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